작업실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 유리관이 천천히 열을 머금고 붉게 물들던 순간, 그 옆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유리 하나였는데, 몇 분이 지나고 나면 그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든다. 이상한 말 같지만, 그게 여기서 배운 첫 번째 감각이었다. 재료를 다룬다는 건 물리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걸.
남서울대학교 환경조형학과. 이름만 들으면 조금 낯설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환경’과 ‘조형’이 무슨 뜻인지, 왜 유리로 조형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를 불로 녹여 형태를 빚는 그 반복된 과정 안에 어떤 깊이가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학과는 유리와 세라믹이라는 재료를 중심으로 공간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단순히 무언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재료가 가진 언어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때로는 조명, 때로는 설치작품, 또 어떤 날은 그냥 찻잔 하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기는 건 늘 비슷했다. 사람, 기억, 온기.
실기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급하게 하지 마. 유리는 그걸 안다.” 이 말을 누가 처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작업이 잘 안 풀릴 때마다 머릿속에 맴돈다. 유리는 마음이 급하면 깨지고, 욕심을 내면 비뚤어진다. 그래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우리 과는 해외 워크숍도 자주 열린다. 일본 유리공예학교나 프랑스 작업소와 연계해 수업이 열릴 때면, 공간과 재료를 바라보는 시선이 확실히 넓어지는 걸 느낀다. 교수님들도 늘 말한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그걸 ‘왜’ 하느냐는 이유라고.
가끔은 유리 작업을 하다 손을 데기도 하고, 세라믹이 깨져서 하루 종일 만든 걸 다 버리기도 한다. 어떤 날은 지독하게 무기력하고, 어떤 날은 작은 곡선 하나에 괜히 울컥한다. 그런데 그게 또 이 학과가 주는 힘이다. 단단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단단해지는 시간인 것 같다.
졸업 전시 준비하면서 한참을 밤새기도 했다. 전시장이 완성되고 나서, 벽에 걸린 내 작업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누군가는 그냥 조명 유리 조각이라 했고, 또 누군가는 ‘따뜻하다’고 했다. 그 말이 참 오래 남는다. ‘따뜻하다.’ 그걸로 충분했다.
사람은 결국 표현하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그걸 기술로, 형태로, 색으로, 빛으로 펼쳐내게 해준다. 완벽한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 더 많은 걸 남기는 곳. 환경조형학과는 그래서 조금 느리고, 그래서 더 오래간다.
지금도 불이 켜진 실기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이상하게 조용해진다. 유리가 흐물거리던 그 시간들, 어쩌면 가장 나답던 순간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